[알베아크] 눈사태

날조대파티 걍 그랬음좋겠다 싶은걸썼고 사관학교시절이고 네.

어쨌든 그건 눈의 탓이었다.

그럴 필요 없었음에도 입학했던 학교는 늘 빡빡했다. 학기 초엔 씻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는 것과 동시에 잠에 들기 일쑤였다. 그건 반대쪽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일어났을 때 옆 침대에선 주로 머리카락을 베개 위에 흩뿌리며 얼굴을 처박고 자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내가 그 애에 대해 아는 건 한동안 머리 색깔과 이름 두 글자밖에 없었다.

룸메이트의 눈동자 색을 처음 본 건 우습게도 1학기가 끝나 갈 때 쯤이었다. 무슨 변덕이었는지 얼굴을 베개에 파묻지 않고 정자세로 자던 것이었다. 그것이 신기해 잠깐 자는 걸 쳐다보고 있었는데, 이불 아래 몸이 옆으로 뒤집히자 별안간 가슴께 오던 이불이 땅으로 떨어졌다. 그 애가 추운 듯 몸을 웅크리다가 이윽고 눈을 뜨자 나는 그제서야 그 애가 청회색 눈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내가 내 침대에 앉아 어색하게 인사했다. 안녕...일어났네. 반대쪽 침대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음...그래, 알베르. 안녕, 알베르.



아크는 아침잠이 많은 편이었다. 기상나팔이 지나간 뒤 깨워도 뜬 눈을 보면 영락없이 꿈을 헤매고 있는 중이어서, 나는 아크에게 알람시계를 권했다. 그 이후에 저 스스로도 심각성을 느꼈는지 어디에선가 아크가 큰 금관악기 소리가 나는 시계를 가지고 왔을 땐 그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웃지 말라고 했음에도 웃는 바람에 그날 밤은 안부인사를 못 하고 잤지만 다음 날에 효과를 체험한 다음엔 사과를 건넸다. 봐, 내가 진짜 열심히 골랐다니까. 아크가 우쭐댔다.

종종 아크가 그럴 때 나는 풀어진 표정을 하곤 했다. 그런 이유로 어느 날 집안 사람 중 한 명이 질책한 적 있었다. 요즘 들어 표정 관리를 안 하는 것 같구나. 내가 더 이상의 잔소리를 막기 위해 답했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지는 않으니까요. 그 사람은 대충 납득하고 그 일로 더 이상은 나를 추궁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딘가 마음이 불편했다. 거짓말을 할 때에도 이렇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그 땐 그걸 단순한 컨디션으로 생각했다.

그 날로부터 며칠이 지나고 몇 달이 지났다. 목련 잎이 지던 나무 위에는 또 다시 흰 눈이 꽃을 피우고 있었다. 아크가 제안했다. 우리 방학 휴가 나오면 공원에 나가보지 않을래? 나는 그걸 받아들였다. 나도 눈을 직접 맞는 건 오랜만이었으니까.

아크는 아무도 밟지 않은 흰 눈을 밟았다. 이른 아침의 사관학교 주변 공원엔 사람이 우리 둘 외에는 없었다. 나는 신나보이는 아크를 보며 벤치에 앉아있었다. 그 때 아크가 손을 까딱였다. 알베르, 나랑 눈싸움 하자! 나는 아크의 손에 이끌려 공터 한복판에 섰다. 으악, 하고 소리를 내며 나는 겉옷에 붙은 눈을 털었다. 곧이어 고개를 들며 '네가 그렇게 원한다면야' 같은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하려고.

아크는 흰 눈이 내리는 공원 중앙에서 눈을 휘며 진심으로 웃고 있었다. 추위에 붉어진 뺨이, 겨울 하늘과 웃음기를 담은 눈이, 느릿느릿 비상하는 해만이 비추는 와인색 머리카락에...그것들에, 그냥 아무 말도 못 하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들은 정말로 눈사태처럼 밀려 내려왔다. 마치 내가 눈 덮인 산 아래 자리잡은 나무로 된 겨울 산장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곧 그들이 날 덮칠 거라는 걸 알고도 나는 가만히 못 박혀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어쨌든 그건 정말로 눈의 탓이었다.


아크: 알베르? 어디 아파? 들어갈까?

눈이 보고 싶어져서 급하게 날조대파티 열었고 아크 너무 짱이야. 진짜야. 나 사랑해. 

......

일락이 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

새 블로그
새 블로그
구독자 4

0개의 댓글

SNS 계정으로 간편하게 로그인하고 댓글을 남겨주세요.
새로운 알림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