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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알베아크입니다 네 그래요. 이 이상 길게 못 쓰는 게 있는 듯 노력해야죠.

날씨가 부쩍 추워짐에도 불구하고 창문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여전히 나쁘지 않은 기분을 선사했다. 창문에 달린 커튼을 열어 햇빛이 안으로 들어오게 하니 적당히 서늘한 온도가 되었다. 그러나 이따금씩 바람이 강하게 불 때 싸늘한 느낌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었으므로 그는 코트의 단추를 잠그는 것으로 타협을 보았다. 아마 그 날도 비슷한 맥락으로 시선을 내려 옷을 여몄을 것이다. 단추가 반대쪽 옷자락을 제대로 붙든 걸 확인한 그가 어느샌가 굴러떨어진 펜을 찾던 중이었다.

“펜 여기 있는데.”

고개를 든 곳에는 있으면 안 될 사람이 태연하게 펜을 건네고 있었다.

 

붉은 머리 소년이 그가 내온 코코아를 홀짝이며 인사했다.

“안녕, 알베르. 너 많이 컸구나….”

짧은 감탄. 소년은 시간이 흘러 대령이 된 옛 친구 앞에서 의자를 조금씩 흔들었다. 의자는 작은 삐걱,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소년이 손을 들어 작게 반가움의 표시를 했다. 그가 코코아를 내온 이후 아무런 말이나 행동도 하지 않았던 이유로 소년은 작게 물었다.

“인사 안 해줄거야…?”

“…아크, 안녕.”

“그래, 만나서 반가워.”

의자가 멈췄다. 동시에 찾아온 정적. 소년은 시선을 머그잔으로 떨궜다. 코코아가 식어가며 희미한 연기를 내고 있었다. 한 쌍의 메마른 연두색 눈이 그런 소년과 컵을 바라보았다. 우물쭈물하며 말을 꺼내기 주저하던 소년은 큰 결심이라도 한 듯 비장한 분위기로 입을 뗐다.

“그으…알베르, 이상하다고 생각 안 해? 그렇잖아, 나는 네가 기억하는 대로라면 베르딜 어딘가에서 모래에 파묻혀 있어야 하는데.”

소년이 그의 시선을 피했다. 아래에서 군화끼리 맞부딪히는 또각또각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잖아도 물어보고 싶었어. 대체 네가 어떻게 이 곳에 있는 거야?”

의구심과 약간의 절절함이 묻어나오는 목소리로 그는 물었다. 그가 보기에 빨간 머리 소년은 정말로 한순간에 사라질 것 같았던 탓이다. 소년이 나타났을 때처럼.

“음, 그 전에…나 건물 구경 한 번만 시켜주면 안 돼? 내가 지금은 이런 처지여도 한 때는 장교를 꿈꾸던 사관학도였는데.”

소년은 아쉬움이 뚝뚝 떨어지는 듯 처연하게 부탁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상쾌한 공기…! 언제나 좋은 일이야, 신선한 숨을 들이쉬는 건. 적어도 베르딜의 모래바람보단 나은 것 같아.”

소년이 벤치에 앉아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서늘한 공기. 오후의 노란 햇살을 받아 빛나는 붉은 머리가 흐트러졌다. 다시 하늘 빛이 담긴 눈을 뜬 소년이 눈을 휘어 웃었다.

“요즘에 그런 생각이 들거든, 막, 내가 그 날 제대로 너랑 마주했다면 지금쯤 너는 다른 곳에 있었을까? 하는…이제 와선 좀 많이 늦긴 했지만…….”

소년은 다리를 쭈욱 뻗어 기지개를 켰다. 미처 팔의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한 소년의 양쪽 소매가 아래팔의 중간으로 올라갔다. 잠시 소년은 그것들을 차분히 정리했다.

"너도 짐작하고 있겠지만 내가 온 건 네게 할 얘기가 있어서야."

소년은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듯이 말을 이어나갔다. 소년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차라리 오늘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거나 반짝이는 돌을 발견했다는 이야기라는 편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어조였다. 그는 소년이 그런 말투를 할 때마다 숨겼던 무언가가 있음을 알고 있었고, 따라서 이번에도 위화감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으나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할로윈이라고 들어봤어? 혹시 너는 신경 안 쓰려나…오늘이 그 날이거든. 망자들이 돌아오는 날.”

이윽고 소년은 그를 향해 몸을 돌렸다. 소년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주인의 움직임에 따라 머리카락도 아래로 향했다. 눈은 웃고 있었으나 안으로 빠져들 것 같은 눈동자가 어쩐지 슬퍼 보였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갈 땐 가더라도 한 가지 소원을 응원해주겠다는 거지. 이렇게 만났는데 아무런 것도 안 해주고 가면 뭔가 허전하단 말야. 뭐 빌래? 오래 살고 싶다던가?”

한동안 둘 사이에는 말이 없었다. 그가 먼저 오래 이어진 침묵을 깨고 소원을 말했다.

“나는…네가 여기 있는 시점에서 불가능한 이야기겠지만,”

“뭔데?”

“네가 살아있었으면 좋겠어.”

회색 코트자락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의 목소리가 조금씩 젖어들어갔다. 손 아래에서 옷이 잔뜩 구겨졌다.

“불가능하단 거 알아. 말도 안 되는 소리겠지만 나는 내 전부를 걸어서라도 너를 지키고 싶었어. 정말이야, 아크…."

"……."

소년은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다 그의 눈을 감겨주며 말했다. 온점마다 물기가 배어나왔다.

"…그래, 알베르. 네 소원은 그거였구나. 열심히 응원해 볼게. 난 진짜로 갈 시간이야. 잘 있어, 알베르. 다음에 꼭 다시 만나."

꼭.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소년이 응당 앉아있어야 할 자리엔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는 처음부터 산책을 위해 건물을 나왔던 듯이 구겨진 옷자락을 털고 일어섰다. 이제는 말마따나 '진짜로' 일해야 할 시간이었다.


* * * * * *


"알베르, 네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소년은 그가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 말 끝을 흐리며 묻는다. 그는 소년에게 그 어떤 감정도 느끼지 않는 것마냥 서 있다.

"아무 일도 없었다."


으 아아악. 글을 썼습니다 늘지를 않는 것 같아요. 이 글을 이런 내용이 보고 싶다고 하셨던 트친님께 바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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